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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포공원

엑스포공원

소재지 : 강원 속초시 조양동 1545-1
문의 : 033-637-4504~5
엑스포 상징탑에서 환상적인 경관을"
  • 지구촌 관광축제인 국제관광엑스포가 열렸던 청초호에는 엑스포의 성공적인 개최를 알 수 있게 하는 73.4m이 엑스포 상징탑과 아이 맥스(I-max)영상관이 있다.
  • 이 탑에서 바라보면 청초호와 설악산 및 동해의 파노라마가 환상적인 아름다움으로 펼쳐진다.
  • 잘 정비된 주변시설 덕분에 쾌적한 하이킹 코스로도 각광받고 있는데 드라마 '가을동화' 촬영장소로의 하이킹이 인기다.
 
설악산해맞이공원
위 치 : 대포동 178-9번지 일원
활용가능용도 : 전통문화공연, 연극, 콘서트영화상영 등
시설규모 : 공연장면적 : 53㎡ / 관람석 : 200석 / 주차장면적 : 2,800㎡
부대시설 : 주차대수 110대
조선시대 우암 송시열선생이 함경도 덕원에서 거제도로 유배되어 동해안따라 이곳을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머무르게 되었는데, 폭우로 물이 불어 며칠 더 체류하다 떠나면서" 물에 잠긴 마을"이라 하여 물치라 불렀다고 한다. 설악 해맞이공원은 탁트인 맑고 깨끗한 동해바다와 설악산 입구에 위치하여 조각상을 감상할 수 있는 조각공원이 있고 야외공연장에는 전통문화상품을 공연하여 여유와 휴식을 만끽 할 수 있는 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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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복탑공원

수복탑공원

속초시 동명동에 위치한 기념물. 흔히 줄여서 수복탑이라고도 부른다. 이 탑은 1954년 3월 당시 읍장이었던 김근식, 피난민 연락소장 박상선, 후방 반공 계몽인 박성주 등이 수복을 기념하고 피난민의 향수를 달래기 위하여, 당시 제1군단 민사처 보좌관 전형윤 소령을 통해 건의를 하여 당시 제1군단장 이형근 장군의 승낙을 얻어(6·25동란으로 수복은 되었으나 아직 군정이 실시되고 있었다.) 피난민의 회사금, 속초읍 부담 육백만환, 군부대의 차량 지원으로 1954.5.10 건립하였다. 탑의 설계는 이형찬, 탑 위의 모자상 조각은 박칠성이 하였으며, 수복기념탑이란 제호는 전형운 소령이 썼다. 그리고 탑에 장호강 시인이 지은 모자상부라는 글을 새겨 놓았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 83. 4. 27 새벽, 동해안을 휩쓴 강풍으로 탑 위의 모자상(母子像)이 부서져 버렸다. 그러자 수복탑(收復塔)을 다시 복원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고, 그에 따라 83년 5월초 범시민적인 수복기념탑 복원건립위원회(收復紀念塔 復元建立委員會, 위원장 金鐘祿)가 발족하여 시민성금 4천여만원과 시비 1천여만원으로 수복기념탑(收復紀念塔)을 재건하여 그 해(1983년) 11월 17일 상오 현장에서 역사적인 제막식(除幕式)을 가졌다. 탑의 설계 및 모자상(母子像) 조각은 원래 모자상(母子像)을 조각하였던 박칠성(朴七星)이 담당하였다. 복원된 이 탑은 좌대폭(座臺幅) 4.6m, 탑신높이(塔身高) 7m, 모자상 높이(母子像高) 2.55m, 총 탑높이(總塔高) 9.55m로 원형 보다 2m가량 높다. 탑신(塔身)은 상하로 구분하여, 상층 탑신(塔身)에는 4면 모두 '收復紀念塔'이란 글자를 새겼다. 수복기념탑(收復紀念塔)이란 휘호는 당시 전형윤(全亨胤) 소령의 글씨를 그대로 오석(烏石)에 옮겨 조각한 것이다. 하층 탑신(塔身) 동쪽 면에는 <수복기념탑 복원기(收復紀念塔 復元記)>, 서쪽 면에는 장호강(張虎崗) 시인이 새로 쓴 <모자상부(母子像賦)>, 남쪽 면에는 당시 동우전문대학장(東宇專門大學長) 한상갑(韓相甲) 씨가 쓴 '民族統一'이란 휘호, 북쪽 면에는 청동으로 조각한 <군·경·민 입체 북진상(軍ㆍ警ㆍ民 立體 北進像)>을 새겼다.
 
모자상부 [ 시 장호강 ]
  • 「첩첩 높이 솟은 산봉우리 앞을 가리고 구비 구비 험한 길 아득히 멀어도 어머니와 어린 아들은 오손 도손 망향의 이야기 나 누며 북녁 고향 땅으로 향하는 그 길 위에 비바람 눈보라 휘 몰아치고 어느 짓궂은 길손이 그 앞길 가로 막는다한들 두 생명 다하도록 낮도 밤도 없이 가야만 하느니 도대체 그 누가 날린 저주의 화살일까 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어느날 땅과 바다와 하늘이 둘로 갈리고 동족상잔의 처절한 피바다의 싸움으로 그 아름다운 강산 두고 온 옛집이 잿더미로 변했다손 치더라도 할아 버지 할머니랑 피땀 흘려 일군 밭과 논 그 정든 삶 터를 찾아 마냥 가야만 하느니 뼈에 저리도록 허구한 고된 날이 본시 살결 고운 북녁 아낙네 예쁜 얼굴에 주름끼 고이기로서니 삼단 검은 머리에 흰 카락 불어나기로서니 항시 머리 위에는 넓고 푸른 하 늘이 열려 있기에 모진 풍파 욕된 세월에도 손과 손 굳게 붙잡고 통일의 새 날을 겨누어 줄곧 앞으로 가야만 하느니 북으로 오직 북으로 고향 길 더듬는 네 다리는 비록 가냘프지만 성난 해일 거센 폭풍에 깊이 쌓이는 모래 밭 헤쳐가며 걸음 걸음 내딛이는 참된 보람에 줄어든 보따리 소중히 옆에 끼고 오늘도 동해 갈매기 노래를 엿듣노라면 불현듯 아롱진 향수가 담뿍 어리는 그 길 을 쉬지 않고 가야만 하느니」
정보제공자
담당부서: 공원녹지과
문의전화: 033-639-2196
최종점검일: 2015-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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